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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인터뷰

글씨 하나로 사람이 달라 보이게 하는 마술, 느껴보고 싶지 않나요?

한빛라이프

|

2019-11-14

|

by 한빛

18,596

저자 인터뷰 - 유한빈

자세히 보기

“매일 책을 읽고, 매일 책에서 뽑은 글귀를 쓰고, 매일 인스타에 글씨를 올리고 있습니다.
만년필에 어울리는 글씨를 쓰고 싶어 시작한 글씨 쓰기였는데 이제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폰트를 인쇄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큼 정교해진 글씨체지만
더 좋아 보이는 글씨를 쓰기 위해 여전히 글씨를 다듬고 있습니다.
6년을 책과 글씨와 한글에 푹 빠져 살다 작년부터
‘한글 정자체를 바르게 쓰는 법’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해줘 너무도 기뻤습니다.
서른 해 넘도록 악필로 살았는데 한 달 남짓 썼다고
글씨가 보기 좋게 바뀌었다고 좋아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이 많아지길 바라며 『나도 손글씨 바르게 쓰면 소원이 없겠네』를 썼다”는
유한빈 작가를 만났습니다.

# 꽤 자주 들었을 질문 같은데 원래부터 글씨를 잘 썼나요?

글씨
전혀 아닙니다. 저 역시 글씨를 잘 쓰지 못해 교정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만년필에 빠져 파카 듀오폴드라는 꽤 비싼 만년필을 샀습니다. 으레 그렇듯 비싼 걸 사고나니 온 데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었는데 유독 글씨가 들어간 사진만 이상해 보이는 겁니다.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만년필과 제 글씨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겁니다. 당시 부모님께서도 글씨가 어린애 같다며 어른스럽게 고쳐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만년필에 걸맞은 글씨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책 저 책 다 보면서 글씨를 따라 쓰다, 제가 딱 원하는 글씨가 시중에 있지 않아 쓰면서 매일 꾸준히 글씨를 다듬었습니다. 그렇게 지금 글씨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글씨를 다듬고 있습니다.

# 책에 다양한 글씨 교정 팁과 노하우가 담겨 있습니다. 그중 방안지 선을 글씨 가이드라인으로 삼을 수 있다는 내용이나 세로로 쓰면 글자 간격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글씨 한 자 한 자에 집중할 수 있다는 내용은 한글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내용 같습니다. 한글이나 글꼴에 대해 따로 배우고 익힌 경험이 있나요?

유레카
반신반의하며 사온 방안지가 한글에 딱 들어맞는 것을 보고 당시엔 정말 아르키메데스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세로쓰기도 방안지에 가로쓰기를 하니 뭔가 이상해서 무작정 세로로 쓴 건데 전후좌우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글자 한 자 한 자에만 집중해 써 내려가면 되더라고요.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글씨를 더 발전시킬 방법이 없을까 더 고민했습니다. 인사동 필방에 있는 서예가들의 서예 작품집을 대부분 사서 따라 해보고, 글자 구조를 보면서 팁을 얻고 얻은 팁을 가지고 제 스타일대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다가 손글씨와는 달리 폰트는 항상 같은 모양이 나와야 된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항상 같은 모양을 내야 한다면 어떤 글자를 썼을 때도 가장 이상적으로 아름다워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본 책이 『한글의 글자표현』, 『한글디자인 교과서』,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와 같은 폰트 관련 책입니다. 그 책들을 보며 제 글씨에 하나하나 적용해나갔습니다. 그래서 제 글씨가 어딘가 서예 같기도 하고 어딘가 폰트 같기도 한 느낌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 악필이었던 사람도 글씨체가 어느 정도 정돈되면 교정을 멈춥니다. 작가님은 남들이 감탄할 만한 글씨체를 얻었는데도 여전히 계속 글씨를 쓰고 다듬고 있습니다.

매력
저도 한때는 제 글씨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별 생각 없이 글씨를 써나갔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때 글씨를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계속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더 완성도 높은 손글씨를 향해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정자체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손글씨도 개발해 각종 상황에 맞는 글씨, 글 내용에 맞는 글씨를 쓰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계속 제 글씨를 다듬을 수 있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저와 제 글씨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 덕분입니다. 항상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성실하게 좋은 콘텐츠 많이 만들 테니 오래오래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거의 매일 필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필사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또 필사는 하루에 몇 분 정도가 좋나요?

필사
글씨 교정을 하려면 글씨를 써야 하는데 매번 짧은 글귀만 쓰다 보니 좀 긴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소설 전체를 필사했는데 소설은 품이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짧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시로 필사 소재를 바꿨습니다.
고등학교 때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공부했던 시가 커서 읽으니 또 다르게 해석되며 다가오는 경험에 푹 빠졌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좋은 시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요.

매일 인스타그램에 올려 보면 ‘좋은 시를 새로 알게 되어 좋다’는 반응과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시인데 커서 다시 보니 느낌이 다르다’ 같은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글씨 교정을 얼마나 하면 좋은지 많이 물어보는데 저는 하루 30분을 추천합니다. 성인은 30분을 온전히 집중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너무 오래 하면 금세 지칩니다. 필사는 매일 조금씩 하길 추천합니다.

# 필사 모임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분이 모임에 나오나요?

필사 모임
필사 모임은 제 필사 경험을 공유하고 6년간 필사를 하며 느꼈던 필사의 장점을 설명하고 필사와 독서를 함께 끌어가기 위한 모임입니다. 필사를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분, 필사가 뭔지 모르겠다는 분, 주말에 시간이 남는데 새로운 취미를 찾고 싶다는 분, 혼자 하면 잘 안 하게 돼 같이 하고 싶다는 분, 필사를 통해 독서 습관을 기르고 싶다는 분 등 다양합니다. 소모임 어플에서 '도란도란'을 검색하면 제가 운영하는 모임이 나온답니다. 필사로 독서 습관도 잡고 인생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꿔보세요!

# 작가님의 내일이 궁금합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탈입니다.가죽 공예를 배워 직접 노트 커버나 만년필 파우치를 만들고 싶고, 북 바인딩을 배워 수제 노트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도 가장 하고 싶은 건 제 공간을 꾸리는 겁니다. 그 공간을 문구와 글씨를 좋아하는 분들이 아지트로 사용할 수 있도록요. 한 켠에는 제가 전 세계를 뒤져 선별한 다양한 문구를 전시 및 판매하고, 제가 직접 디자인한 노트나 문구도 팔고 싶습니다. 문구에 대해 잘 모르는 분도 와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갖는다면 더없이 기쁠 듯합니다. 그 공간에서 철학과 인문 필사 모임 혹은 성경 필사 모임 등도 같이 열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쉽지 않네요.

# 마지막으로 악필을 교정하겠다고 마음먹은 분들에게 응원 부탁드립니다.

응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을 아시나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인데요, 제가 어미닭이 되어 밖에서 열심히 쪼고 있을 테니 여러분도 안에서 열심히 쪼아주세요. 저 혼자서는 알을 부화시킬 수 없어요. 그리고 글씨 교정이 꼭 정자체일 필요는 없습니다. 정자체를 토대로 내 글씨를 좀 더 곧게, 획을 분절해서 쓰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예요. '매일 조금씩 꾸준히, 결코 글씨를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여러분 곁에서 항상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다면 널리널리 알려주세요. 그러면 저는 더 신나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유한빈
책 보는 걸 좋아합니다. 책을 읽다가 좋아하는 글귀를 발견하면 밑줄을 치거나 사진을 찍어 간직했는데 언젠가부터 글귀를 한 자 한 자 마음에 새기듯 노트에 써봤습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게 어느새6 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글씨 동영상 콘텐츠를 올리고 있습니다. 더불어 클래스101에서 온라인 수업을, 노트폴리오 아카데미에서 오프라인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수제 노트 브랜드를 만들고 싶고 글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문구점도 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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